사랑, 사랑…, 사랑. 혀 끝에서 단어가 데굴데굴 구른다. 마치 사탕을 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. 과일 향 나는 사탕이 아니라 계피나 홍삼 맛 사탕. 첫 맛은 씁쓰름 하지만 계속 굴리다 보면 어느새 단맛이 퍼지는. 부드럽고도 유한 데, 묘하게 힘이 있는 단어였다. 입 안에서만 조용히 맴돌다, 끝내 입 밖으로 나와 공기를 울리진 못했다. 내겐 그런 단어였다. 와 닿지 않는, 그래서 내뱉을 수 없는. 머릿속에서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이 둥둥 떠다닌다.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. 뜻 모를, 목적 없는 말들이 정처 없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니며 어지럽게 유영한다. 죽어있는 감성들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인가. 아무래도 곧 할 때가 되었나 보다. 처음. 나는 처음에 집착한다. 몰랐는데 그렇다는 걸 얼..
나는 모난 성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. 가시를 두르고 있는 까슬하고 따가운 말들을 듣는 게 싫다. 그런데 최근에 깨달았다. 그게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이 아니라, 그저 방어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. 당하기 싫으니까 애초부터 강하게 보이려는 거다. 그걸 알고 나니, 더 이상 싫어할 수가 없었다. 방어막을 두르기까지의 여정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짐작이 되어서. 무기력하게 누워서 일주일을 보냈다. 일이 있었고, 별일 아니라고들 하지만, 내게는 어쩐지 큰 일이었다. 퐁퐁 샘솟던 글에 대한 의욕도 온통 메말라 버리고, 글이 되지 못한 감정은 결국 저 깊숙이 가라앉아버렸다.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며칠 전에 밖으로 나가서 책을 사왔다. 기초 일본어 교재. 뭐라도 머리에 좀 채워야 할 것 같아서. 소설은 사지 않..
조금 내려놓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. 쉽게 말하면 포기. 삶을 포기한다, 뭐 이런 건 아니고. 욕심이라던가, 강박이라던가, 그런 것들. 가지고 있으면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, 그만큼 정신적인 희생이 따르는 것들. 네 살 차이 나는 동생에게서, 어릴 적 내 모습을 보았다. 사실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을. 안쓰럽기도 하고 가엾기도 해서 가만히 쳐다보는데, 어쩐지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. 한참 학업 스트레스를 받을 나이인데, 그걸 나도 아는데,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 지 모르겠다. 어줍잖은 조언은 연장자의 잔소리로 들릴 터이고, 그렇다고 방관하기엔 동생의 상태가 나와 너무 똑 닮아있어서 걱정이 된다. 저 시절 내 일기장은 정말이지 저주로 가득 차있다. 저주와 비관, 좌절, 절망. ..